다양성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흥행 반란이 놀랍습니다. 지난 5일 개봉한 뒤 12일째 다양성영화 일일 흥행 순위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상업영화와 함께 매긴 전체 흥행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만 해도 ‘검은 사제들’과 ‘007 스펙터’에 이어 3위를 차지했습니다.다양성영화라고 걸출한 흥행성적을 남기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터널 선샤인’의 흥행 행진은 매우 예외적입니다. 2005년 개봉한 뒤 만 1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가 흥행 1위를 달리고 있으니까요.
개봉 성과 뛰어넘는 ‘이터널 선샤인’의 재개봉 성적
더욱 놀랍게도 ‘이터널 선샤인’의 재개봉 성과가 2005년 흥행 성적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터널 선샤인’은 2005년 17만2,774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았습니다. 지난 5일 재개봉한 뒤 ‘이터널 선샤인’을 찾은 관객은 14만9,682명이었습니다. 하루 8,000명꼴로 관객이 들고 있으니 19일쯤이면 재개봉 성적이 개봉 당시 성적을 넘어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은 대만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지니고 있었던 재개봉 영화 최고 흥행 기록(5만6,425명)을 이미 간단히 넘어섰습니다. 상영관 수가 계속 느는 추세라 ‘이터널 선샤인’의 흥행 반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성공 요인으로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 없는 콘텐츠의 힘이 꼽힙니다. ‘이터널 선샤인’은 2005년 당시 흥행에서 큰 재미는 보지 못했으나 열성 팬층을 형성했습니다. 서로 사랑했다가 이별하게 된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 뒤 다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을 꿈처럼 묘사해 판타지 멜로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감독 미셸 공드리의 사랑에 대한 성찰과 빼어난 상상력이 빚어낸 수작이었기에 관객의 뇌리에 깊게 새겨졌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조용히 영화에 대한 호평이 널리 퍼졌습니다. 10년 동안 이어진 입소문이 결국 재개봉을 통해 확인 된 셈이다.
늦가을 시장 신작 멜로의 부재를 꼽는 영화인도 있습니다. ‘더 폰’과 ‘그놈이다’, ‘검은 사제들’ 등 스릴러가 바통을 이어 받으며 늦가을 극장가를 점령한 상황에서 나온 이변이라는 해석입니다.
업계에선 로또 당첨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평가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2012년부터 문화계의 전반적인 복고바람을 타고 재개봉 붐이 일었으나 미풍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배급과 마케팅 비용 등을 감안하면 ‘이터널 선샤인’의 재개봉 손익분기점은 3만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익분기점의 5배 가량에 해당하는 흥행 성적을 이미 올렸으니 대박이란 형용이 잘 어울립니다.
‘잭팟’에 얽힌 뒷이야기도 로또 당첨 사연 못지 않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수입사는 씨맥스 픽쳐스입니다. 2018년까지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국내 상영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씨맥스 픽쳐스 대표는 오래 전 영화업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씨맥스 대표의 지인이 소유한 노바미디어가 ‘이터널 선샤인’의 재개봉을 추진했습니다. 재개봉에 따른 수익 대부분도 당연히 노바미디어 차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문형비디오(VOD) 수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업계에서는 재개봉으로 크게 흥행하며 홍보 효과를 크게 냈으니 VOD 사용 건수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례적인 대박… 재개봉 대부분은 ‘VOD 마케팅’용
‘이터널 선샤인’처럼 재개봉으로 신작 부럽지 않은 흥행 성적을 올린 묵은 영화들이 몇 편 더 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이전까지 재개봉 영화 흥행 왕좌를 지켰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비롯해 일본영화 ‘러브레터’와 ‘레옹’이 재개봉 뒤 각각 4만명을 다시 불러모았습니다. 불법복제 테이프든, 개봉 당시든 워낙 많은 관객들이 즐긴 영화이다 보니 재개봉하고도 환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개봉 영화들은 소리 없이 극장가에 나섰다가 소문 없이 물러납니다. 재개봉 영화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재개봉 영화가 1주일에 1편 꼴로 관객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화업계에서는 VOD시장의 폭발적인 확대를 요인으로 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영화 VOD시장 규모는 2,254억원으로 2010년(491억원)에 비해 다섯 배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해외 영화의 국내 상영권리는 계약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보통 7년 정도입니다. 어느 수입사가 특정 외화를 수입했다면 적어도 7년 정도 국내에서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합니다. 이 권리는 주로 VOD 등 부가판권 시장에서 빛을 발합니다. 최근 만난 어느 영화인은 4년 전 수입해 개봉한 외화로 여전히 돈을 벌고 있다고 했습니다. 금액 크기는 개봉 직후만 못해도 주변 사람에게 술 한 잔 사줄 정도의 돈이 꼬박꼬박 입금된다는 겁니다. 여러 외화의 상영권을 지닌 수입사라면 부가판권 시장 수익만으로 사무실 유지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아닌 ‘종영한 영화도 다시 보자’는 말이 나올 만도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개봉을 VOD수익 확장을 위한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재개봉이라는 이벤트를 거쳐 관객들에게 영화의 존재를 환기시키고 VOD관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지요. 어느 영화사는 최근 ‘중환영웅’과 ‘폴리스스토리’ ‘천녀유혼’ ‘용적심’ ‘쾌찬차’ 등 추억의 홍콩영화를 잇달아 개봉시키기도 했습니다.
예술영화만 집중적으로 재개봉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1990년대 시네필을 흥분시켰던 ‘퐁네프의 연인들’과 2000년대 대표적인 흥행 예술영화 ‘몽상가들’을 재개봉시킨 영화사 오드가 대표적입니다. 오드는 이젠 고전이 된 음악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19일 재개봉합니다. 김시내 오드 대표는 말합니다. “재개봉 영화가 많다 보니 ‘추억팔이’에 대한 관객들의 피로가 적지 않습니다. 언론과 극장도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오래됐다고 하나 예술영화는 여전히 감성적으로 통할 수 있고 못 본 세대도 있으니 시장성이 있다고 봅니다. VOD 수익까지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나 세상 일이 어디 그리 쉽나요.”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이터널 선샤인 재개봉 예고편 https://youtu.be/Zyzop2nzR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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